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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장군의 소박한 밥상, 나물밥의 뿌리를 보여주다

- 춘궁기 생존 음식에서 별미로 발전한 나물밥의 역사
-가난의 상징에서 웰빙 음식으로, 음식 문화의 새옹지마

김누리 기자 | 기사입력 2024/11/15 [14:21]

최영 장군의 소박한 밥상, 나물밥의 뿌리를 보여주다

- 춘궁기 생존 음식에서 별미로 발전한 나물밥의 역사
-가난의 상징에서 웰빙 음식으로, 음식 문화의 새옹지마

김누리 기자 | 입력 : 2024/11/15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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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나물밥이 유행인데 예전에는 쌀이 없어서 섞어 먹었다고 한다.    

 

고려 말의 명장 최영 장군은 평생 검소함을 실천하며 살았다. 그의 삶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철저히 따르는 것으로 시작되었고, 이는 그의 전 생애를 관통했다. 그는 재상이 된 후에도 재물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으며, 먹고사는 데 필요한 정도의 재산에 만족하며 살아갔다. 그의 검소함은 손님 접대에서도 드러났다. 최영 장군의 집에 손님이 오더라도 한낮이 지나도록 식사를 내놓지 않았다고 한다.

 

해가 저물어갈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나물을 넣어 지은 밥을 내왔고, 이는 손님들의 배고픔을 겨우 달래는 수준이었다. 손님들은 워낙 시장한 상태였기에 나물밥을 깨끗이 비우며 “밥맛이 좋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칭찬이 배고픔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실권자의 집에서 나온 음식을 두고 대놓고 불만을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인지 명확하지 않다.

 

 

당시 기준으로 보면 나물밥은 그다지 먹기에 편한 음식은 아니었다. 현대에야 웰빙 음식으로 각광받는 나물밥이지만, 과거에는 가난한 집이나 흉년이 든 해에 부족한 곡식을 대신하기 위해 산나물을 넣어 지은 밥에 불과했다.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흔히 구할 수 있는 나물을 뜯어 넣어 밥을 지었고, 이는 생존을 위한 절박한 선택이었다.  

 

나물밥의 대표 격인 곤드레밥은 강원도 산골 지역, 특히 정선 지역의 화전민들이 춘궁기에 먹던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쌀과 같은 주곡이 부족할 때는 조나 옥수수마저 떨어져 산나물인 곤드레를 캐어 밥을 짓거나 죽을 쑤어 허기를 면해야 했다. 민요 <정선 아리랑>에는 당시 화전민들의 고단한 삶이 담겨 있다. "한치 뒷산의 곤드레 딱죽이 임의 맛만 같다면, 올 같은 흉년에도 굶어 죽지는 않겠네"라는 가사는 산나물로 연명해야 했던 그들의 고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치 뒷산’은 실제 정선군 동면에 위치한 산 이름이고, ‘곤드레’는 그곳에서 흔히 나는 산나물의 이름이다. 민요 속 표현은 곤드레 나물밥이 목구멍을 넘기기 힘들 정도로 맛이 거칠고 질겼음을 반영한다. 오늘날 곤드레밥이 참살이 음식으로 대접받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현대에는 곤드레 나물을 넣어 밥을 짓고 양념 간장을 비벼 먹는 방식으로 조리되어 맛있는 별미로 평가받지만, 과거에는 그렇게 먹을 여건조차 되지 않았다. 주로 곤드레 나물에 콩나물을 섞어 죽을 쑤어 먹었고, 그마저도 나물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굶거나 다른 식물을 구해 먹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영양실조로 부황이 들고 결국 목숨을 잃기도 했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척박했던 삶 속에서 곤드레밥은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음식이었다.  

 

나물밥은 가난한 농민들이 부족한 곡식을 대신해 먹던 음식에서 출발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점차 다양한 재료가 사용되면서 별미로 자리 잡았다. 조선 시대 문헌에도 나물밥의 여러 종류가 기록되어 있다. 곤드레밥을 비롯해 시래기밥, 도라지밥, 콩나물밥, 김치밥, 무밥, 쑥밥, 송이밥 등은 당시 서민들의 밥상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었던 음식이다.

 

나물뿐만 아니라 감자밥, 고구마밥, 초밥, 도토리밥, 밤밥 같은 재료를 활용한 밥도 등장했다. 또한, 간을 한 감밥, 감잎밥, 배추속대밥, 연근밥, 죽순밥 등은 서민들이 일상에서 즐기던 음식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음식들은 본래 부족한 재료로 배를 채우려는 절박한 상황에서 탄생했지만, 오늘날에는 건강식으로 변모하며 현대인의 식탁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나물밥의 변화는 단순히 음식의 역사를 넘어 당시 사회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과거에는 왕이나 지배계층이 먹던 기름진 음식이 오늘날 거리 음식의 주요 메뉴가 되었고, 반대로 서민들이 먹던 저열량 음식은 참살이 음식으로 비싼 값을 주고 먹는 건강식으로 자리 잡았다. 곤드레밥 역시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새롭게 재해석되고 있다.

 

한때 가난과 고통의 상징이었던 음식이 오늘날에는 웰빙 음식으로 각광받는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로운 변화다. 음식의 새옹지마라 할 만한 이 변천사는 우리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며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결국, 나물밥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 먹던 음식에서 시작해 문화적 가치를 지닌 음식으로 거듭났다. 오늘날 나물밥은 과거의 고단했던 삶을 기억하게 하는 동시에,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미식 문화와 맞닿아 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음식의 의미는 달라지지만, 그 속에 담긴 삶의 이야기는 변하지 않는다.

 

나물밥의 역사는 인간이 어떻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이자, 우리가 음식 문화의 발전을 통해 삶의 풍요로움을 추구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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