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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굴비로 유명한 물만밥' 손님 접대 음식의 숨겨진 역사

과거의 일상식이자 손님 접대 음식, 물만밥의 유래
임금도 즐기던 음식, 조선시대의 물만밥
현대에 되살아난 전통 별미, 물만밥의 재발견

전용욱 기자 | 기사입력 2024/11/13 [09:41]

'보리굴비로 유명한 물만밥' 손님 접대 음식의 숨겨진 역사

과거의 일상식이자 손님 접대 음식, 물만밥의 유래
임금도 즐기던 음식, 조선시대의 물만밥
현대에 되살아난 전통 별미, 물만밥의 재발견

전용욱 기자 | 입력 : 2024/11/13 [09:41]

과거에는 물만밥이 손님 접대 음식이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여름날 시원한 찬물에 보리밥을 말아 고추장이나 된장에 찍어 먹는 맛은 그 자체가 별미로 통했고, 겨울에는 뜨거운 물에 찬밥을 말아 김장 김치를 곁들여 먹는 것이 이색적인 식사법이었다.

 

또한, 물에 밥을 말아 보리굴비를 곁들여 고추장에 찍어 먹는 방식은 지금도 “밥도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랑받는 식사법이다. 이렇게 물만밥은 단순한 음식의 맛을 넘어 과거 시골에서 어릴 적 경험했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음식이다. 밥에 물을 부어 급하게 끼니를 때우던 부모님의 모습 또한 이 음식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물만밥은 주로 시간이 부족하거나 찬거리가 부족할 때, 또는 제대로 된 반찬 없이 식사를 대충 때울 때 즐겨 먹었다. 그렇기에 격식을 차리기보다는 신속하게 먹기 위해 흔히 먹던 음식이었으며, 남들과 함께 차려 먹는 음식은 아니었다.

 

현대의 관점에서 손님을 대접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인식이 있지만, 옛날에는 정반대였다. 과거에는 높은 지위의 양반들이나 심지어 왕도 물만밥을 즐겼으며, 대갓집에서는 손님을 맞이할 때 물만밥을 내놓는 것이 특별히 이상하지 않았다.

 

고려 말기의 대학자인 이색이 남긴 문집에는, 그가 재상으로 임명된 인사들을 만나러 다니던 때의 기록이 있다. 그는 한 장관급 벼슬의 집에 방문하여 물만밥을 대접받았다는 이야기를 적었다. 이는 현대 기준으로는 정승의 집을 방문해 간단히 물만밥을 먹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당시에는 손님 접대를 위한 간소한 식사로 물만밥을 대접하는 것이 일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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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굴비와 녹차를 풀어만든 물만밥이 전세계에 소개되고 있다.    

 

물만밥은 조선시대 임금들도 즐겨 먹던 음식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성종은 가뭄으로 백성들이 힘들어하는 상황에서 백성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는 의미로 40일 이상 점심 때마다 물만밥을 먹도록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백성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성종이 내린 결정이었고, 신하들이 성종의 건강을 염려해 중지할 것을 건의했음에도 그는 이를 거부하며 물만밥을 고집했다고 전해진다.

 

정조 역시 물만밥을 즐긴 임금 중 하나였다. 그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이 있는 화성을 다녀가며 물만밥을 먹은 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는 기록을 남겼는데, 이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그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고 전해진다.

 

물만밥의 종류도 다양했다. 차가운 물에 밥을 말아 먹는 밥을 '수요반'이라고 했으며, 물과 밥을 함께 끓여서 먹는 '수소반'도 있었다. 실학자 이익은 물만밥에 대해 "찬이 없어도 물에 말아 먹으면 맛이 더해진다"며 "물만밥을 먹는 것은 우리나라의 전통 풍속"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러한 문화는 찬밥에 물을 붓고 데운 누룽지 문화와도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오늘날에는 차가운 물에 밥을 말아 보리굴비와 함께 즐기는 '보리굴비 정식'이 고급 요리로 자리 잡고 있으며, 그 가격도 만만치 않다. 과거 급히 끼니를 때우기 위해 먹었던 물만밥이 현대에는 별미로 재탄생한 것이다. '역사란 돌고 도는 것'이라는 말이 어울릴 법하다.

 

중국 청나라 황제 건륭제도 물만밥과 비슷한 음식을 경험한 일화가 있다. 건륭제가 변복을 하고 시찰 중에 농가에서 얻어 먹었던 누룽지와 채소국은, 뜨거운 누룽지에 국물을 부었을 때 '타다닥' 소리가 나며 구수한 향을 냈고, 이 음식은 황제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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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
시민포털지원센터 이사
월간 기후변화 기자
내외신문 전북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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