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에 개입한 북한, 더욱 복잡해진 핵 위협..시리아 핵시설 폭격시리아와 북한, 이란의 삼각 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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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보는 시리아 원자력위원회 위원장 이브라힘 오스만 박사가 북한 핵과학자와 접촉하며 핵기술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정보는 이스라엘이 CIA와 공유하며 시리아와 북한 간의 핵 기술 협력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증명하는 자료로도 활용됐다.
이스라엘의 이 작전 배경에는 복잡한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갈등이 깔려 있었다. 이슬람 세계는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어 서로를 견제해왔는데, 시리아는 이란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시아파 종파로서 이란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있었다.
이는 수니파의 종주국이라 불리는 사우디아라비아와 갈등을 빚는 이유 중 하나로 작용했다. 이스라엘에게 시리아와 이란의 핵 개발은 단순한 국경 너머의 문제가 아니라 직접적인 안보 위협으로 인식됐다. 이스라엘이 과수원 작전을 결행하게 된 이유도 바로 이러한 위협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스라엘은 미국에게 시리아 핵시설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작전 허가를 요청했으나,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과 행정부는 이라크 전쟁으로 이미 중동에서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라크 전쟁의 명분으로 삼았던 대량살상무기(WMD)가 실제로 발견되지 않았던 일도 이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에 부시 행정부는 시리아 핵시설을 폭격하자는 이스라엘의 요청을 거절하며 더 확실한 증거가 없이는 군사 작전을 실행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문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이스라엘 총리 에후드 올메르트는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 후, 더는 미국의 허가를 기다리지 않기로 결심하며 시리아의 핵시설을 자국의 안보를 위해 제거할 작전에 돌입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는 오페크 정찰위성을 통해 시리아 동부 디르 아 조르에 위치한 핵시설을 철저히 감시하며 필요한 정보를 수집했다. 그러나 위성 사진만으로는 이 시설이 진정한 원자로인지, 단순한 공장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이에 이스라엘은 최후의 수단으로 특수부대를 현장에 파견해 직접 방사능 검출 여부를 확인하는 계획을 세웠다.
2007년 8월, 이스라엘 최정예 특수부대 사예레트 마트칼 대원들은 헬리콥터를 타고 야간에 시리아 영토로 침투했다. 대원들은 시리아 군복으로 위장하고, 저공비행으로 레이더에 걸리지 않게 하면서 디르 아 조르 지역으로 접근했다. 현장에서 채취한 토양 샘플은 이 시설이 원자로임을 입증할 수 있는 방사능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는 이스라엘에게 확고한 증거가 되어, 더는 미국의 지지 없이도 작전을 강행할 명분을 제공했다.
작전 명칭은 ‘과수원 작전’으로 정해졌고, 이스라엘 공군은 비밀 훈련에 돌입했다. 이 작전을 지휘한 엘리제르 쉬케디 장군은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라는 지시 아래 공습 연습을 반복했다. 2007년 9월 5일 밤, 라마트 다비드 공군기지에서 F-15I 전폭기들이 출격해 디르 아 조르의 알키바르 시설로 향했다.
이들은 터키 국경에 가까운 시리아 레이더 기지 일부를 정밀 타격하며 시리아의 방공 시스템을 무력화했다. 시리아의 대공 방어 능력은 상당했지만, 이스라엘은 레이더를 마비시키는 바이러스 프로그램을 심어둔 상태여서 전폭기들은 무사히 목적지에 도달했다.
이스라엘 특수부대 샬다그 요원들은 전날부터 현장에 잠입해 레이저 지시기로 공습 목표를 정확히 지정했다. 자정을 넘겨 9월 6일이 된 시각, 이스라엘 전폭기들은 알키바르 시설을 차례로 폭격했다. 원자로는 완전히 파괴되었고, 이로써 이스라엘은 중대한 안보 위협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이스라엘은 터키를 통해 시리아에 “또 다른 핵시설 건설 시 관용은 없을 것이다”는 경고 메시지를 전달했다.
시리아는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당일 아침 시리아 정부는 이스라엘의 폭격 사실을 숨기려 했으나, 오후에 이르러서야 간단한 성명을 통해 공격을 인정했다. 그러나 핵시설이 폭파되었다는 사실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이 침묵을 유지하는 한, 시리아도 이를 문제 삼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는 시리아 정부가 이스라엘과 갈등을 격화시키지 않으려는 의도로 분석되었다.
중동의 수니파 맹주국 사우디아라비아와 터키 등 다른 수니파 국가들 또한 시리아의 핵무장에 부정적이었다. 시리아가 핵을 보유하는 것은 곧 이란의 핵 보유를 의미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의 과수원 작전은 비난보다는 오히려 중동 내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특히 이란과의 대립이 지속되는 사우디는 이스라엘의 작전을 속으로 반기며 고마움을 표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1982년 이스라엘이 이라크의 핵시설을 파괴한 ‘오페라 작전’ 당시와는 다른 반응이었다.
이스라엘의 무기 개발사에는 실패 사례도 존재한다. 이스라엘 외교관과의 식사 자리에서 나온 전투기 ‘라비’ 개발 실패 사례는 이러한 배경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은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 과정에서 발생한 실패는 이후 더 나은 군사전략과 무기 체계를 구축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포함해 수많은 도전을 겪었으나, 이러한 경험을 통해 더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발전해왔다.
왜 수니파(사우디아라비아등)은 반대했나?
중동 지역에서 이슬람 종파 간 갈등은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수니파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시아파 맹주국인 이란과 중동 패권을 두고 오랜 기간 경쟁해 왔으며, 시아파에 속하는 시리아는 이란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이란은 레바논의 헤즈볼라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시아파의 세력을 확장하려는 전략을 펼쳤다. 시리아가 핵을 보유하게 된다면 이는 단순히 시리아만의 핵무장으로 끝나지 않고, 시아파의 세력이 확대되는 의미를 가지며 중동의 지정학적 균형이 시아파 측으로 기울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터키 같은 수니파 국가들은 시아파 진영의 핵무장은 곧 이란의 영향력이 커지고 중동의 안보 구도가 더욱 불안정해질 수 있는 가능성으로 인식했다. 시리아가 핵을 보유하는 것은 이란의 핵 보유와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란은 시리아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해 핵시설을 건설하려 했고, 이는 이란이 사실상 시리아의 핵 프로그램을 통해 중동에서의 핵 균형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로 해석되었다.
이로 인해 수니파 국가들은 시리아가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심각한 안보 위협으로 간주했으며, 사우디는 시리아의 핵무장이 사실상 이란의 위성국가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우려했다. 이런 이유로 과수원 작전에서 이스라엘이 시리아의 핵시설을 파괴했을 때, 수니파 국가들은 이를 비난하지 않고 내심 지지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스라엘의 과수원 작전이 시리아의 핵개발을 저지한 덕분에,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국가들은 시아파 진영의 군사적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막는 결과를 얻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