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튜어트 밀과 관용... 자유와 관용의 진정한 의미를 탐구하다존 스튜어트 밀의 사상과 타인 피해의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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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하원 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정치적 활동을 거의 하지 않던 철학자였던 그는 자신의 추천인들에게 “저는 의원이 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선거를 위해 돈을 쓰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원 의원이 되더라도 여러분을 위해 노력할 뜻이 없습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무관심을 표명했다.
또한 선거 공약으로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주자는 파격적인 주장을 내세우기도 했다. 당시 정치인들은 그를 비웃으며 "이런 식으로는 당선될 리 없다"는 예측을 내놓았다.
하지만 존 스튜어트 밀은 이런 무모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하원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그의 신념은 흔들림이 없었고, 그는 철학자답게 명확한 철학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대표 저서 『자유론』에서 그는 개인의 자유를 강력하게 옹호한다.
모든 사람은 자기 뜻대로 말하고 행동할 자유가 있으며, 이 자유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보장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이는 흔히 ‘타인 피해의 원칙’이라 불리며, 현대 민주사회의 중요한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밀의 이 같은 신념은 때로는 불편함을 일으키기도 했다. 선거 당시 그는 영국 노동자들을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를 묻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솔직한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직설적인 언행은 당시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기도 했으나, 밀은 상대의 입을 막지 않고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사회를 건강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류 전체가 같은 의견이라도 단 한 사람이 반대한다면, 그 사람의 입을 막아서는 안 된다”며 다양한 의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밀의 철학은 비판이 사라지면 사회가 정체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그는 “사람들은 눈앞의 적이 사라지면 하던 일을 그만두고 나태해진다”고 말하며, 의견의 대립이 사회의 활력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라고 봤다. 다양한 의견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고, 서로 다른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밀의 생각은 동시대에 다양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현대 정치철학자 웬디 브라운은 관용이 갖는 한계를 지적한다.
예를 들어, 서구 사회에서 일부 종교적 소수자나 여성들이 히잡을 쓰는 것에 대해 '관용'한다고 해서 차별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오히려 상대를 무시하는 태도로 보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브라운은 단순히 관용만으로는 상대의 독특한 문화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존중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밀은 또한 자유로운 사회를 위해서는 소수 의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다수의 생각이 전체를 지배하는 상황에서 소수 의견은 사회의 경직을 막는 유일한 방어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수 의견의 자유는 천재의 아이디어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천재는 흔히 기존의 통념을 깨뜨리는 생각을 내놓기 때문에, 그의 의견이 소수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 밀은 천재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는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고 믿었다.
밀의 사상은 이후 관용에 관한 철학적 논쟁의 기초가 되었으며, 관용과 자유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했다. 유럽 중세 사회에서는 교회가 다른 생각을 억압하기 시작하면서 비판이 사라지자 부패와 정체가 발생했다. 이는 관용이 부족한 사회가 어떻게 타락하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로 남아 있다.
반대로 로마 제국은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수용하며 관용을 통해 광대한 영토를 통치했다. 로마는 정복지의 사람들을 배려하며 관용 정책을 펼쳤지만, 제국이 분열되었을 때는 공통된 로마적 전통이 남지 않았다. 이는 관용만으로는 완전한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한다.
관용이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는 시대에서 밀의 자유에 대한 주장은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현대 사회는 다양한 문화와 가치관이 공존하고, 이를 포용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동성애자, 장애인, 다문화 가정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관용하며 살아가야 하는 시대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상대를 받아들이는 것만이 관용의 끝은 아니다. 밀은 관용과 논쟁이 공존할 때, 비로소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고 봤다.
현대의 민주주의에서는 또 다른 철학적 개념, ‘넛지’가 대두되고 있다.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이 제시한 넛지는 강압적이지 않고 사람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방법론이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절전을 위해 신경 쓰도록 할 때 “절약하면 350달러를 아낄 수 있습니다”와 “낭비하면 350달러를 잃습니다”라는 두 문구 중 손해를 강조한 후자가 더 효과적이라는 점이 넛지의 특징이다.
넛지는 일상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응용되고 있다. 예컨대, 추가 수업을 신청한 학생들이 99%를 넘는다고 할 때, 이를 들은 학생들은 다수에 속하고 싶은 심리로 수업을 신청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는 인간이 다수의 선택을 선호하는 집단 동조 편향을 활용한 넛지의 한 예다.
탈러와 선스타인은 이를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라 부르며, 억지로 시키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게 만드는 방식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설득 기술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넛지의 확산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넛지가 사람들의 자유로운 선택을 제한하는 수단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수사학의 일종으로 민주사회에서 자칫 궤변술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실제로 수사학이 성행하던 고대 그리스에서는 소피스트들이 궤변술을 이용해 여론을 조작했고, 로마 공화정 시절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밀은 이런 수사학이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독재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밀은 또 현명한 자들이 결정을 대신 내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개인의 판단 능력은 스스로 결단하고 선택하는 과정에서 성장한다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대신 결정을 내려준다면, 시민의 판단력은 점점 약해지고, 독재에 취약한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생각과 행동을 억압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며, 이는 민주사회의 필수적인 요소다.
결국, 관용과 자유는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가진다. 단순히 상대를 수용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다양한 의견이 공존할 때 사회는 활력을 잃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관용은 폭력이나 억압보다 분명히 나은 선택지지만, 무조건적인 관용은 오히려 사회의 문제를 묵과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밀의 자유와 관용에 대한 사상은 오늘날 민주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안광복의 키워드 인문학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