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밥과 약밥의 차이...콩밥먹을래?콩의 영양적 가치와 역사 속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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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한국의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에게 제공된 콩밥은 그 당시 사회에서 보편적이지 않은 식사 방식이었다. 콩밥을 먹는 것이 당시 감옥 생활의 상징처럼 인식되었고, 그 이유로는 콩에 포함된 영양소가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콩은 단백질, 철분, 비타민 B군이 풍부하여 적은 양으로도 몸에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할 수 있다. 이러한 콩의 장점 덕에 교도소에서 콩밥이 보편화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당시의 콩밥은 영양 제공 목적보다는 값싼 식재료로서의 실용성이 더 크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1920년대 한국 사회에서 콩밥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예를 들어, 1921년 한 절도범이 콩밥이라도 먹고 싶다는 이유로 감옥행을 원했고, 1928년에는 콩밥만을 먹겠다고 결심한 아내의 이야기까지 있었다. 이처럼 사람들은 콩밥을 단순한 '음식'이라기보다는 빈곤과 고통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겼다. 감옥에서는 실제로 콩의 비중이 쌀보다 더 높았고, 그 이유로는 콩밥이 일반 밥보다 값이 싸다는 점이 있었을 것이다. 재소자의 건강보다는 경제적 이유가 우선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1936년에는 <조선중앙일보>에 '콩밥'을 주제로 한 동시가 실렸다. 여기서 아이가 콩밥을 극도로 싫어하는 감정을 표현하며, 당시 가정에서도 콩밥을 피하고자 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이 시기는 쌀농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콩밥이 주식으로 자리 잡으면서 쌀이 귀하다는 사회적 현실이 반영된 시기였다. 콩의 높은 비중으로 인해 콩밥은 먹기에 부담스러운 음식으로 인식되었고, 이는 곧 당시의 경제적 어려움을 반영하는 상징이었다. 현대인들에게는 건강한 잡곡밥으로 인식되는 콩밥이지만, 당시에는 달갑지 않은 식사로 여겨졌던 것이다.
사실 동양에서 콩밥을 싫어한 역사는 오래되었다. 고대 중국에서는 군사들이 콩밥을 먹으며 끼니를 때우는 것을 비참한 식량난의 상징으로 여겼다. 한나라 시기의 역사 기록인 <한서>의 <진승열전>에는 병사들이 콩밥을 먹고 싸울 의욕을 잃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런 역사적 맥락은 콩밥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빈곤과 궁핍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는지를 잘 보여준다.
콩밥 외에도 조선 시대의 궁중이나 상류층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밥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팥물밥이다. 팥물밥은 단순히 팥을 섞은 밥이 아니라 팥으로 물을 들인 붉은색 밥으로, 임금의 상차림에 오를 정도로 고급스러운 음식으로 여겨졌다. 이는 미적 감각뿐만 아니라 영양적 측면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팥물밥 외에도 약초로 물을 들인 다양한 색깔의 밥이 존재했으며, 이는 음식을 통해 건강을 도모하려는 의도를 반영한 것이다.
이처럼 한국의 전통 밥 문화에서 특정한 색의 밥은 건강과 장수를 상징하는 의미를 담았다. 대표적인 예로 ‘오반(烏飯)’이라 불리는 검은색 밥이 있는데, 이는 도교에서 신선들이 먹는 것으로 여겨졌다. 당나라의 의사 진장기는 오반을 만드는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하며 약효가 있는 밥으로서의 효능을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색의 변화를 넘어서 오랜 수명을 기원하는 음식 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약밥의 경우도 흑설탕이나 간장으로 색을 입힌 검은색 밥으로, 고대부터 약밥의 기원은 조선의 전설에 나오는 찹쌀밥 제사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밥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늘날처럼 캐러멜로 물들인 검은색 밥이 된 과정에는 미적 아름다움과 건강을 동시에 추구하려는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는 약밥을 ‘밀반홍(蜜飯紅)’이라 칭하며, 달콤하고 검붉은 색깔의 약밥이 건강을 돕는 음식으로 전해지고 있음을 강조했다.
결국, 한국 전통 밥상에서의 색은 건강과 장수를 의미하는 상징성을 담고 있었으며, 약초, 벌꿀, 간장 등으로 다양한 색을 입혀 차별화된 음식을 즐기고자 했다. 현대인들이 과거의 콩밥을 떠올리며 건강식을 떠올리는 것과는 달리, 당시 콩밥은 형편없는 식사로 인식되었으며, 팥물밥이나 오반 등 다양한 색깔의 밥이 특별한 의미를 담아 제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