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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믿고 간절히 바라라....처칠과 세종의 결단과 신념

전용현 기자 | 기사입력 2024/11/04 [14:42]

스스로를 믿고 간절히 바라라....처칠과 세종의 결단과 신념

전용현 기자 | 입력 : 2024/11/04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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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픽사베이) 윈스턴처칠    

 

1940년 5월 10일, 윈스턴 처칠이 대영제국의 총리 자리에 오른 날, 그는 65세의 나이로 새벽 3시에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고 회고한다. 모든 일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게 된 그는 “운명과 팔짱을 끼고 걷는 기분”이라며, 자신의 인생이 이 순간을 위해 준비된 것임을 확신했다. 처칠의 결단은 역사적으로도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는 운명적 사명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소명과 역할을 깊이 신뢰했다.

 

조선의 세종 역시 이러한 운명을 받아들이며 깊이 고민했다. 젊은 시절, 세종은 천명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부여된 사명을 자각했다. 그의 형인 효령대군이 세종에게 “현세에서 미륵이 되어라”라고 말한 것도 그의 인생에 큰 의미로 남았다. 단순히 하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깨닫고,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인지하는 것이 진정한 천명임을 그는 깨달았다.

 

세종은 단순히 왕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조선에 필요한 지도력을 발휘할 자가 자신임을 믿었기 때문이다. 성숙하지 못한 이들은 흔히 높은 자리를 탐하지만, 세종은 자신이 발휘할 능력과 나라를 위해 헌신할 의지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지식과 식견을 통해 자신이 조선의 왕으로서 충분한 자질을 갖췄다고 믿었다. 더불어 그는 백성을 향한 측은지심과 애정이 군주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임을 강조하며 강렬한 열망을 품고 있었다.

 

세종이 왕세자로 지명되던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 태종이 양녕대군을 폐위하고 새로운 세자를 책봉하려 하자 신하들은 누구를 지명해야 할지 고심했다. 당시 태종은 구체적으로 누가 다음 세자가 되어야 할지 물었고, 신하들은 충녕대군이 출중한 인물임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태종은 충녕대군의 학문과 덕성을 거듭 확인하며 그를 세자로 지명하게 된다.

 

세종은 마침내 자신이 원했던 자리, 조선의 왕위에 올랐다. 그는 이 자리에서 결연한 의지를 드러내며 정사를 펼칠 것을 다짐했다. “종묘의 소중함을 받들고 땀 흘려 이루신 은택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다짐한 그의 결의는 그가 자신의 소명을 깊이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처칠과 세종의 이야기는 시대와 국가를 넘어서 깊은 영감을 준다. 스스로의 사명을 자각하고 자신을 믿으며 간절히 바라는 마음, 그 속에서 길을 찾는 이들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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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포털 지원센터 대표
내외신문 광주전남 본부장
월간 기후변화 기자
사단법인 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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