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사를 통틀어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손꼽히는 세종대왕은 실제로는 그가 어떤 인물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다. 세종대왕의 성격, 취향, 이상형의 여성, 감명 깊게 읽은 책, 외모, 목소리 등 개인적 측면에 관한 정보는 부족하며, 이와 관련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비록 <세종실록>이라는 훌륭한 역사적 자료가 남아있으나, 이는 당시의 사건과 일화들이 문서화된 형태로 서술되어 있어 세종의 인간적 면모를 충분히 알기에는 한계가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서 <세종실록>은 그 시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임은 틀림없지만, 단순한 사실 중심의 서술은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다가가기에는 다소 부족한 점이 있다.
세종대왕을 실제로 본 사람은 당연히 현재 존재하지 않기에, 그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상상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과거 어느 정치인이 세종의 키가 매우 작았다고 언급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1만 원권 지폐에 새겨진 세종대왕의 초상화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탈리아의 역사학자 베네데토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라고 말했듯이, 역사 속 인물은 현재의 시각에서 재해석될 필요가 있다. 세종의 업적과 그의 시대를 재조명하여,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우리 시대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시도가 중요하다.
세종대왕은 주변 사람들을 발탁하고 관리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리더였다. 많은 성과를 이루는 과정에서 그가 가까운 신하들의 조력에 의지한 점도 물론 있다. 그러나, 무엇이 그에게 이런 성과를 이룩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는가 하는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당대의 뛰어난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발탁하여 조직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그들의 역량을 발휘하게 한 점은 세종대왕의 뛰어난 인재 관리 능력의 일면을 보여준다. 이러한 역량은 그가 가진 인간적 통찰력과 연민에서 비롯되었으며, 그의 리더십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유추하게 한다.
세종은 자신의 처지와 성격, 학문적 탐구를 통해 세계의 다양한 인물들과 공통점을 공유하는 면모를 보였다. 그의 철학과 인내는 마치 중국의 등소평이나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와도 닮아 있었다.
즉위 후에는 로마의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같은 모습도 보였으며, 장년기에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과 같은 외교적 능력과 리더십을 발휘했을 것이다. 또한 과학에 대한 열정은 러시아의 피터 대제와도 닮아 있었고, 만년에 느꼈던 인생의 허무함과 연민은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의 삶을 연상케 한다.
이렇듯 세종대왕은 다양한 얼굴을 가진 다면적 리더였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에서는 구미의 리더십 사례가 주로 인용되며, 한국사 속 리더십의 사례는 종종 외면받고 있다. 이는 우리 역사 속에서 한국인의 특성과 사회적 조건을 가장 잘 이해했던 인물인 세종대왕을 조명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세종대왕의 리더십은 비록 600년 전의 것이지만, 오늘날에도 중요한 가치와 교훈을 전해준다.
그의 리더십의 출발점은 ‘허무’를 바탕으로 한 인간에 대한 연민이었다. 세종대왕은 어린 시절부터 궁중에서 권력 다툼의 비참함과 허무함을 체감하며 자라났다. 이러한 경험은 그에게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과 동정을 심어주었고, 이는 이후 국가를 경영하고 사람을 대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세종은 일찍이 불교 철학에 심취했고, 이는 그에게 인간의 한계와 허무함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었다. 그는 생의 무상함을 깨달으며 사람들을 위한 따뜻한 마음을 지닌 리더로 성장했다.
세종대왕은 왕자로서 출가를 꿈꾸기도 했으나, 둘째 형인 효령대군이 먼저 출가함으로써 왕위에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그는 "진정한 은둔은 시장통 한가운데서 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내면의 평정을 찾고자 했으며, 재위 기간 동안 실천적 사고와 현실적 대처로 나라를 이끌었다. 그의 치열한 현실 속 도전과 자기와의 싸움은 그가 리더로서의 길을 걸으면서도 끊임없이 자기 성찰을 이어가게 했다.
세종대왕의 리더십에는 인간애와 구도에 대한 향수가 담겨 있었다. 그는 불교 철학과 부처의 가르침에 깊은 관심을 두었고, 이를 기반으로 현실을 초월하는 이상을 추구했다. 그의 마지막 시인 <월인천강지곡>은 이러한 이상을 담아낸 작품으로, 세종대왕이 인간애와 이상을 품고 지향한 세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이러한 철학은 인간 경영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그의 리더십의 본질을 이루었다.
세종은 그 누구보다도 인생의 허무를 깊이 깨달았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