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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준, 『단군은 정말?』[서평]:내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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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준, 『단군은 정말?』[서평]

편집부 | 기사입력 2023/05/30 [09:07]

박용준, 『단군은 정말?』[서평]

편집부 | 입력 : 2023/05/30 [09:07]

 

개천절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기념식전을 치른 것을 계기로, 1948년 정부 수립 이후에는 국경일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올해 개천절은 아마도 제4353주년 경축식으로 치뤄질 예정이다. 

이와 같이 압도적인 숫자만큼이나, 개천절의 중심에는 언제나 단군이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단군 이야기는 여러 기록에 조금씩 다르게 전해지는데, 현존하는 자료들 중에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것이 가장 오래되었다. 

여기에 수록된 단군 이야기는 환인-환웅-단군으로 계통이 이어지고 , 곰과 호랑이가 등장하는 등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로 사람들의 인식에도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때문에 개천절을 기획한 이들이 반드시 <삼국유사>의 단군을 의식한 것은 아니라 해도, 우리는 <삼국유사>를 통해 개천절, 그리고 단군을 의식하게 된다. 

지금까지 단군 이야기는 단일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강화하는 데 활용되어 왔다. 

그 정체성이란 아직 민족의 분단이라는 것을 겪어 보지도,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제 강점기에는 곧 다가올 한민족의 해방을 염원하는 이야기가 되고, 해방 이후에는 아직 오지 않은 한민족 통일이 반드시 이뤄져야만 한다는, 민족 독립 아니면 민족 통일의 이야기가 되었다. 

한때 카자흐스탄의 단군 기념 주화가 일각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것이나, 여전히 단군을 광대한 영토를 거느렸던 제국의 지배자로 바라보고 싶어하는 움직임 역시 단군 이야기를 단일 민족이란 관점에서 해석하는 경향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관점은 현재까지도 내부로는 사회 갈등, 외부로는 분단 지속을 겪고 있는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유효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미 다민족 사회로 이행하는 등, 다원화하는 한국 사회에서 단군 이야기는 여전히 의의를 지닐 수 있을까? 

기존에는 우리의 건국 이념이라고도 불리는 ‘홍익인간’의 이념에서 그 가능성을 찾아보는 움직임이 있었다. 

일단 그 사전적인 의미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라고 하는 것은 현대 민주국가가 지향하는 바와 합치하는 듯하다. 

그리고 현대 민주국가조차도 홍익인간을 재해석할 수는 있었지만, 이를 뛰어넘고 대체할 만한 표어를 아직까지도 찾아내지 못한 것을 볼 때, 홍익인간 이념의 생명력은 영원할 듯이 보인다. 

그러나 기존의 홍익인간 이념은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해석되어 왔다. 

그 이념은 오히려 고대 왕권이 내부를 통치하고 주변 지역을 복속하기 위해 내세운 이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 경우 홍익인간은 임금의 덕화를 입은 백성들이 널리 이로움을 입게 된 것이라고 해석되며, 마치 광개토왕비에서 왕의 은택을 노래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단일 민족 정체성과 홍익인간이 모순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데는, 그만큼 이 이념이 지배 이념의 성격 또한 띠고 있었던 점을 지나칠 수 없다. 

단군 이야기는 일제 강점기를 전후로 형성되어 오늘날에 이르는 동안, 단일 민족의 서사로만 해석되어 왔으나, 이러한 해석의 연장이 아니면서도, 지나치지 않은 대안적이고도 새로운 해석과 서사 구조가 창출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모색해 보고 싶다. 

여기에는 ‘두껍게’, ‘다르게’, ‘작은 것을 통해 읽기’, ‘깨뜨리기’라는 신문화사의 연구 방법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좀 더 새로운 관점에서 단군 이야기를 바라볼 수 있다. 

하늘을 지배하는 환인의 서자로 태어난, 환웅은 하늘을 물려받아 다스리는 대신 인간 세상을 다스리게 된다. 

여기서 환인은 수많은 하늘을 각각 다스리는 지배자들 중 하나였고, 환웅은 그 지배자의 여러 아들 중 하나였다. 

그러므로 단군 이야기는, 수많은 하늘의 지배자들과 그 자식들의 이야기 중 일부를 다룬 이야기로서, 수많은 세계가 공존하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으며, 저마다의 하늘에서 저마다의 땅으로 향하는 수많은 민족들의 이야기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한편 웅녀는 곰에서 인간이 된 뒤에도 한동안 혼인할 사람을 구하지 못했으며, 환웅과 일시적인 결합으로 단군을 낳았다. 

환웅이 그러했듯 단군 또한 지배자의 여러 아들 중 하나였을 뿐 아니라, 단일 민족 서사의 주인공답지 않게 이질적인 존재들의 결합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단군 이야기의 서사 구조를 분석한다면 단군 이야기는 다원적이고도, 개방적인 세계관을 제시하는 이야기로 해석되기도 한다. 

단군 이야기는 고조선의 건국에 대하여 어림잡아 수천 년 전의 일이라고 하고 있어, 이야기, 그리고 이야기가 가리키는 사건 사이에 아득한 시간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 점에서 볼 때, 단군 이야기는 고조선 시기의 사회상과 연관짓는 것 뿐만 아니라, 단군 이야기의 가장 오랜 기록, <삼국유사>가 집필되던 시기의 역사적 맥락을 함께 생각해 보고 싶다. 

고려는 스스로는 물론, 저마다 황제국을 칭하며 명멸했던 수많은 국가들과 공존하고 있었다. 

 

 

건국 이래 300년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고려 주변에는 거대한 제국이 등장해 주변국들을 제압하기도 했다가, 분열, 멸망을 겪는 일들이 일어나곤 했다. 

 

그리고 고려는 그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았으며, 한때는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했다가 몰락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겪은 역사적 경험은 <삼국유사>은 단군 이야기가 현전하는 방식으로 기록되는 데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여겨진다. 

 

단군 이야기는 신성하고 절대적인 텍스트라거나, 확고부동한 역사적인 실체만으로 여겨질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단군 이야기를 통해 다원적이고 개방적인 세계관이 있으며, 우리의 시공간은 세계의 일부분이며 상대적인 것이라는 점, 우리, 그리고 타인과 그들의 세계가 저마다의 논리를 지니며 공존한다는 사실을 상상할 수 있다. 

 

단군 이야기는, 이제는 역사적 차원의 접근, 단일 민족 서사를 넘어, 다민족국가화하는 한국 사회가 직면하게 될 수많은 난관들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세계관이자 상상력으로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박용준, 『단군은 정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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