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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신문 09-06-21 00:00 | 최종업데이트 00-00-00 00:00    
"여기, 또 한 사람이 갑니다"

[박종태를 보내며] 우리가 그것을 알았다면…


 여기 또 한 사람이 갑니다.

살고 싶었으나, 열 살, 여덟 살 새끼들 끼고 남들처럼 살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던 한 사람이 갑니다. 마누라한테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받으며 오래오래 함께 살고 싶었으나 그걸 할 수 없었던 한 사람이 갑니다.

동지들을 져버릴 수 없었던 엄청난 죄를 짓고 한 사람이 갑니다. 피가 흐르는 손으로도 꽹과리를 치던 상쇠 그 무거운 책임감이 굴레가 되어 한 사람이 갑니다. 약속이 헌신짝 보다 쉽게 버려지는 나라에서 약속을 지키라고 우직하게 외쳤던 한 사람이 갑니다.

78명이나 되는 생목숨이 해고당했는데 1인시위 마저 철저하게 가로막힌 그 절망의 벽을 죽어서야 훨훨 넘어선 한 사람이 갑니다. 78명이나 되는 노동자가 짤렸는데 변변한 집회 한 번 되지 않는 관성의 벽을 몸뚱아리 내던져 깨고자 했던 한 사람이 갑니다.

기를 쓰고 살고 싶었으나 끝내 살 수 없었던 박종태 동지가 갑니다. 평범하게 살기가 가장 힘든 나라에서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 동지가 이제 영영 갑니다.

그냥 농사나 짓고 살게 내버려뒀으면 그렇게 제명대로 살았을 전직 대통령이 죽고 조문객이 수백만이 줄을 섰다는데 대전의 빈소는 텅 비었다는 유인물을 읽은 날. 남원엘 다녀왔습니다. 박종태 동지를 처음 만났던 남원 시외버스터미널. 터미널은 그대로였고 약국도 그대로였고 매표소도 그대로였고 아무렇게나 자란 참외 몇 알을 놓고 오고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는 노인네들의 시든 눈빛도 그대로인데 남루한 터미널을 가로등처럼 밝히던 환한 웃음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지났던 연수원 가는 길을 택시를 타고 가는데 그때 우리가 한 시간 반 남짓한 길을 오가며 수많은 얘기들을 나눴을 텐데 왜 하필 그 말이 깨진 소주병처럼 박혔는지 모르겠습니다. 노동조합 하면서 딴 건 힘든 게 없는데 아이들이랑 자주 못 놀아 주는 게 젤로 미안하단 얘기. 팔불출처럼 들리것지만 우리 애기들이 참 겁나게 이쁘단 얘기.

그 아이들을 두고 어찌 가셨습니까. 아빠가 이 세상에서 최고로 좋다는 그 아이들을 놓고 차마 어찌 가셨습니까.



 

박종태 지회 동지 여러분. 죄송합니다.

그동안 가만히 앉아서 택배를 보내고 받으면서 거기에 얼마만한 땀이 실려 있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택배를 부치면 당연히 가는 거라고만 생각했지 그 당연한 일을 위해 얼마만한 노동이 배어있는지도 몰랐습니다. 920원 생명이 실린 무게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무거운 박스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택배 노동자들을 보면서도 물 한잔 떠드리지 못했습니다.

물건을 던지듯 놓고 깍듯한 인사도 없이 바람처럼 뛰어가는 당신들을 보면서도 불친절을 탓하기만 했지, 그래야 생존이 지켜진다는 사실도 그때는 몰랐습니다. 늦은 시각 택배를 받은 날은 무례함을 탓하기만 했지, 당신들도 그 시간이면 새끼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인간이라는 것도 까맣게 몰랐습니다. 명절날 고향 가는 기차 안에서 택배라는 전화를 받고 "고향 가는 길인데 어쩌라구요", 퉁명스럽게 내뱉을 줄이나 알았지, 당신들에게도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고향이 있을 거라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다른 집 아이들은 손자들 손잡고 오는데 밤이 늦도록 오지 않는 아들을 목 놓아 기다리는 늙은 부모님이 계실 거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우리가 지불하는 택배비 몇 천원 중에 당신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920원이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 돈으로 세금내고 기름값 내고 새끼들 키우고 그렇게 다리가 후들거리도록 허덕거려야 생존이 유지된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걸 알았다면 박종태 동지가 살았을 거 아닙니까. 그걸 알았다면 그 아까운 사람이 그렇게 죽진 않았을 거 아닙니까. 그렇게 살았던 78명이 짤렸는데 아무 것도 안하진 않았을 거 아닙니까. 체포영장이 떨어진 박 지회장이 해고자들 몇 명만 서글프게 집회하는 걸 지켜보다가 끝내 목을 매진 않았을 거 아닙니까. 경찰들에게 피터지게 끌려가는 동지들의 모습이 이 세상에서 본 마지막 풍경이진 않았을 거 아닙니까. 우리가 함께 싸웠다면 그가 목숨을 바치지 않아도 78명 동지들 복직되었을 거 아닙니까.

목숨을 바치고야 얻어낸 78명의 복직. 그 일이 끝내 사람을 죽이고야 되는 일이었습니까. 사람을 죽이고야 이루어질 만큼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이었습니까.

박종태 지회 동지 여러분. 박종태라는 이름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할 동지들. 지회장을 잃고 조직을 얻은 동지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긴 52일을 보낸 동지 여러분. 52일 동안 제대로 울 수도 없었던 동지 여러분. 지회장이 목숨보다 사랑했던 동지 여러분. 혜주와 정하, 그리고 하수진 동지를 지켜주십시오.

그리고 혜주야.

네 이름을 써놓고 몇 시간을 그저 들여다보기만 했다. 다 큰 어른들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을 열 살짜리 너에게 설명하는 일은 생각보다 막막했다. 한 번만이라도 아빠를 보고 싶다는 열 살짜리 너에게 더 이상 아빠를 볼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일은 이렇게 구차하고 죄스럽다. 50년 산전수전 인생살이 중에 가장 곤혹스러운 건 남겨진 아이들에게 아빠의 부재를 설명하는 일이다. 몇 번을 겪은 일임에도 겪을 때마다 이름이 더해져 무겁고 아프다.

준하라는 아이가 있단다. 올해 열세 살이니 너한텐 오빠겠구나. 그 아이의 아빠도 네 아빠처럼 정의롭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네 아빠처럼 준하의 아빠도 아이들 얘기를 할 때면 눈이 빛나고 표정이 들뜨곤 했단다. 네 아빠처럼 많은 노동자들을 책임진 지회장이도 했단다. 그 노동자의 생존이 위협을 당할 땐 자기 목숨을 던져서라도 지켜내야 하는 사람이었단다.

잘 돌아가던 회사가 갑자기 수백 명의 노동자를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해고했고 네 아빠가 그랬듯이 준하의 아빠도 싸웠단다. 집에도 못 들어가고 싸워서 마침내 합의를 했지만 그 약속을 회사가 어겼다. 네 아빠가 그날 그 언덕을 올랐듯이 크레인엘 올라갔고 준하의 아빠도 그 위에서 다시는 내려올 수 없었다.

▲ 박종태 지회장의 영결식에서 엄마 품에 안겨 울고 있는 박 지회장의 딸 혜주.

 

혜주야.

세상에 태어나 십년도 못난 너희들을 상주를 만들어야 하는 게 너무 부끄럽고 미안해. 열 살, 여덟 살짜리가 겪기엔 너무 낯설고 힘겨운 일을 이렇게 겪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

네 아빠처럼 정의로운 사람이 살기엔 세상엔 잘못 된 일이 너무 많단다. 불의한 권력에 억눌려 아무도 말하지 못할 때 혼자 일어나 외치는 용기 있는 자들에 의해 그나마 우린 인간일 수 있었다. 불이익이 두려워 모두 눈감아 스스로 어둠이 될 때 목숨을 횃불로 밝혀 온 정의로운 사람들에 의해 역사는 이만큼이라도 왔단다. 네 아빠 같은 사람들을 징검다리처럼 디디며 민주주의라는 피의 강을 또 이렇게 건너간다.

혜주야.

어느 날 꿈에라도 아빠가 오시걸랑 따듯하게 웃으며 맞아드리렴. 아빠가 마지막까지 품고 갈 네 그림처럼 네 옆엔 언제나 아빠의 자리를 놓아두렴. 자신의 목숨을 바쳐 수많은 사람을 살린 아빠의 자식답게 씩씩하고 건강하거라.

박종태 동지.

사소한 기억마저 두고두고 아프겠지만 당신이 있어 행복하고 든든했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박종태 동지 편안히 잘 가요. 당신의 동지였음이 부끄럽지 않도록 살겠습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 ddonggri@pressi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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